1화
기적 그리고 기억
그룹명조차 평범한 ‘트웰브’는
K-POP 전성시대에 걸맞지 않게,
서울 외곽의 오래된 건물 지하에서
하루 열 시간 넘게 안무를 연습했다.
배수관이 드러난 천장, 깜박거리는 형광등,
습기 낀 거울. 고장 난 환풍기와 땀 냄새, 먼지 냄새가 뒤섞인 곳.
쾌적하진 않지만, 이곳은 멤버들의 꿈과 현실이 단단히 얽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예린 언니, 저 오늘도 야간 연습이죠?”
막내 김하늘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응. 근데 넌 좀 쉬어. 나 혼자 혼날 테니까.”
예린은 무너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웃어 보였다.
그녀의 발목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뒤에서 정시연이 팔짱을 낀 채 다가왔다.
“우리도 공평하게 망가져야지. 혼자 멋진 척 하지 마.”
모두 킥킥 웃으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무도 쉬지 않았다.
그들은 매일을 데뷔 전날처럼 살았다.
연습복은 무릎이 헤졌고,
트레이닝화는 뒤꿈치가 떨어지고 밑창이 닳아 있었다.
녹음실 대신 회의실에 담요를 깔고 보컬 연습을 했고,
안무 영상은 스태프의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처음엔 열세 명이었다.
그러다 한 명이,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다음 날, 거울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장예린은 그 종이를 조용히 주워 접어
자신의 노트에 끼워 넣었다.
“그 애 몫까지 우리가 채우자. 알지?”
예린이가 그저 평소처럼 내뱉는 말이었지만, 이번엔
뭔가 멤버들의 마음 속 깊이 파고 드는 울림이 있었다.
“난 진짜 모르겠어. 데뷔할 수 있을지…”
정시연이 무릎을 안고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도 좀 그래. 곧 데뷔인데 음방 일정도 안 잡고…
이대로 쫑 날까 봐 무서워.”
예린은 옆에 앉아 숨을 고르듯 천천히 말했다.
“무섭지. 나도 그래. 근데 무대는 거짓말 안 해.
진심이면, 누군가는 알아봐.”
“…한 명이면요?”
하늘이가 땀을 닦으며 별 생각 없이 물었다.
예린이는 하늘이를 바라봤다.
“그 한 명을 위해서라도, 우린 해야 해.”
지민이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엔딩을 바꾸면 되죠.
쫑 난다는 말, 내가 제일 싫어하거든요!”
시연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데뷔 쇼케이스 날.
작은 극장이지만, 음향과 조명이 갖춰진 무대.
연예부 기자가 아닌, 팬들을 위한 자리였다.
200석 중 100석도 채 안 되는 관객.
오지 못한 팬들을 위해 유튜브 라이브를 준비했지만,
카메라는 딜레이가 심했고 음향도 찌그러졌다.
“또 노래 끊겼어!”
“그냥 계속해!”
무대 조명은 뿌옇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이크는 소리가 먹히고, 몇 명이 박자를 놓쳤다.
카메라 위치도 전달받은 것과 달랐다.
스태프가 손짓으로 위치를 바꾸라 했고,
누군가 무대 위에서 잠깐 울먹였지만
조명 뒤에 가려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결국 쇼케이스는 기대보다 훨씬 조용히 끝났다.
그러나 팬 한 명이 찍은 직캠이
기적의 시작이 되었다.
창작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