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사라지는 소녀들
“언니! 소식 들었어요?”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한 이하윤의 목소리에, 장예린은 대답 대신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햇볕에 그을린 볼, 캐리어를 질질 끌며 달려온 그 모습이 괜히 미안하게 느껴졌다.
두 주 동안 본가에서 잠시 마음을 쉬고 온 하윤에게, 지금 이 현실이 너무 잔혹하게 느껴졌다.
“무슨 소식?”
예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는 게 두려웠다.
“대표님이… 사라졌다는 얘기요. 연락이 전혀 안 된 지 꽤 됐다던데…”
예린은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그게 벌써 4일째야…
아파서 쉬는 네가 걱정할까봐 멤버들한테
연락하지 마라 했는데 어떻게 알았니?“
그녀의 목소리는 무겁고, 끝이 흐릿하게 떨렸다.
“…그냥, 느낌이 이상했어요.”
하윤은 작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언니한테서 톡 하나 없는 것도, 단체방도 며칠째 조용한 것도…
딱히 무슨 말을 한 건 아닌데, 뭔가…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계속 뉴스 뒤지고, 팬 커뮤도 찾아봤어요. 근데 그때… 대표님 얘기가 뜨더라고요.”
대표는 평소처럼 연습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사람.
아이들에게 늘 “너희는 무대 위에서 빛날 자격이 있어”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건,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회사 복도를 지나던 그 뒷모습뿐이었다.
하윤은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럼 그 뒤로 아무것도 없어요? 진짜로 연락 하나도?”
“응. 회사도 ‘확인 중’이라는 말만 반복해. 이젠 아예 입을 닫아버렸고.”
“경찰에 신고는요?”
“직원 말로는 회사에서 신고했다는데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우리한테는 대표님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냥 기다리고만 하고…“
“헐… 진짜 말도 안 돼…”
예린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심지어 일정도 전부 중단됐어. 이유는 말하지도 않고.”
실종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대표와 함께 멤버들은 다음 앨범 콘셉트와 수록곡 아이디어를 밤늦도록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따뜻했고,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리더도 아닌 대표가 자취를 감추자, 모든 톱니바퀴가 멈췄다.
그리고… 김하늘.
“하늘이는요?” 하윤이 낮게 물었다.
예린은 조용히 가방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오래 쥐고 다닌 흔적이 역력한 종이였다.
구겨진 끝자락은 조금 찢어져 있었고, 잉크는 뿌옇게 번져 있었다.
“이거… 하늘이가 그날 준 쪽지야.”
예린은 말끝을 흐리며 쪽지를 펼쳐 보였다.
‘리더님, 혹시 모르니까 이거 나중에 꼭 보여줘요. 진짜 꼭요.’
김하늘은 팀의 막내였다.
해맑고 장난기 많고, 모두를 웃게 만드는 아이.
힘든 일정 중에도 “우리 귀여우니까 못해도 괜찮죠?”라며 분위기를 풀던 아이였다.
그런 하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유난히 진지했고, 생경했다.
“그날 이후로, 숙소에 들어오지 않았어. 전화도 꺼져 있고… 연락이 안 돼.”
예린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누구도, 아무도...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 몰라. 심지어 회사조차.”
하윤은 말없이 예린의 손에 쥐어진 쪽지를 바라보았다.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회사에선 뭐라고 해요?”
“‘휴식 중’이래. 멋대로.”
예린은 한숨을 쉬었다. “실종이라 생각하지 말래. 잠깐 쉰다고 생각하래. 누가 그 말을 믿겠어.”
두 사람이 말없이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예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 주 안에 새로운 대표가 온대.”
하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새로운… 대표요?”
“‘운영 정상화를 위한 임시 대표 선임’이란 공지가 왔어. 모든 걸 원래대로 돌린다고.”
“대표님도, 하늘이도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데… 그걸 원래대로라고 부를 수 있어요?”
하윤의 말에 예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요한 연습실 안.
두 사람은 문득, 그 공간이 예전보다 훨씬 차갑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회의 소집 연락이 왔을 때, 예린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건 그냥 스케줄 조정 같은 게 아니야.’
미팅 장소는 사무동 5층, 평소 임원 회의가 열리는 대회의실이었다.
트웰브 멤버 전원이 불려간 건, 데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회의실 안은 낯설고 차가웠다.
커다란 원형 테이블 중앙에 놓인 생수병조차, 마치 감시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예린이 도착했을 땐 대부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윤해솔은 팔짱을 낀 채 무표정했고, 박소민은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지민은 팔을 꼬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체 뭐야 이 분위기… 연습도 다 캔슬하더니 갑자기 이건 또 뭐냐고.”
하윤은 예린 쪽을 흘끔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뭔가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였다.
문이 열렸다.
높고 단정한 힐 굽 소리가 고요한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낯선 여성이 등장했다.
흰 셔츠 위에 얇은 회색 블레이저, 매무새 하나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그녀의 머리는 정갈한 포니테일로 묶여 있었고, 시선은 흐트러짐 없이 곧았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공기가 정리되고, 멤버들의 숨소리마저 작아졌다.
“안녕하세요.”
낯선 여성이 또박또박 인사를 건넸다.
“오늘부로 트웰브 팀의 업무 전반을 맡게 된 류성아입니다.”
그녀는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하시던 전 대표님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빠르게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말투는 또렷했다.
하지만 그 속엔 낯설 만큼 인공적인 정제감이 느껴졌다.
예린은 그 감정을 외면하지 못했다.
어딘가 이상했다. 이 사람은 너무 매끄러웠다.
“대표님은… 지금 어디 계신 건가요?”
하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류성아는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천천히 꼬았다.
“그 부분은 저희도 계속 확인 중입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단정한 말투는, 누군가가 철저하게 준비한 발표문처럼 차갑고 정제되어 있었다.
예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하늘이는요?”
류성아는 그제야 예린을 바라보았다.
“그 친구는 현재 휴식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한지민이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하늘이는 휴식 중이 아니예요. 숙소에도 없고, 연락도 안 돼요.
그걸 알고 계실 텐데,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 순간 회의실 안은 숨조차 쉬기 어려운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몇몇 멤버들은 눈치를 보며 시선을 돌렸고, 누군가는 불안한 듯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류성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지민 씨, 지금은 공식적으로 정리된 입장을 전달드리는 자리입니다.
자세한 내막은 향후 별도로 공유드릴 예정이고요.”
그녀는 살짝 웃었다.
“여러분 모두, 지금은 무대에 집중해 주시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그 미소는 부드럽고 정돈돼 있었지만, 어딘지 사람 같지 않았다.
예린은 갑작스레 소름이 돋았다.
몇 년 전, 연습생 시절에 한 선배가 조용히 퇴출됐을 때도 이런 공기가 감돌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은폐하는 사람들의 표정.
지금 그 표정이, 류성아의 얼굴 위에 정확히 얹혀 있었다.
회의실에서 나온 뒤, 멤버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무거운 공기만 가득했고, 층마다 멈춰서는 소리조차 뇌리에 박혔다.
윤해솔은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박소민은 이어폰을 귀에 꽂았지만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하윤은 벽 쪽 모서리에 서서 자꾸만 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다 반복했다.
예린은 흐릿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마주보며 생각했다.
누군가는 리더로서 행동하길 바라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잘하자”라는 말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의 중심을 잡아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건 오후 세 시 무렵이었다.
연습실도, 녹음실도, 스케줄도 전부 멈춰 있는 날.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는 아이들 사이에, 누구도 "같이 이야기 좀 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예린은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대로 가면 팀은 정말 깨진다.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그녀는 조용히 거실로 나와 창문을 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커튼을 밀고 들어왔다.
“다들 괜찮은 거야…?”
예린이 먼저 말을 건넸다.
거실에 앉아 있던 윤해솔이 고개를 돌렸다.
해솔은 눈을 피하며 말했다.
“글쎄… 괜찮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덧붙였다.
“내가 이상한 거일 수도 있는데… 새 대표, 무서웠어. 그냥 말투나 태도 때문이 아니라, 뭔가… 느낌이.”
그 말에 박소민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나도 그래. 그 사람 눈빛, 사람을 보는데 마치…
우리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어.
안 보는 척하면서도 다 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
예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같은 걸 느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서 경고등이 켜지는 듯한 불쾌한 기분.
그건 단순히 불친절한 사람에 대한 인상이 아니었다.
함께 있는 공간의 공기 자체가 바뀌는 매우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그때, 한지민이 방에서 나왔다.
표정은 예전과 같았지만, 손끝은 자꾸만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거실로 들어와 앉자마자 말했다.
“우린 뭐라도 해야 해.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면, 대표님도 하늘이도… 그냥 묻혀버릴 것 같아.”
“지민아…” 예린이 부르려 했지만, 지민은 말을 이었다.
말하면서도 입술이 하얗게 말라 있었다.
“지금 회사 분위기 봤잖아. 우리가 무슨 말 하든 다 차단당할 거야.
이럴수록 우리끼리라도 뭉쳐야 해. 아니면, 우리까지 하나둘씩 사라질지도 몰라.”
그 마지막 말은 너무 급작스러웠다.
하지만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이 진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두가 눈치챘기 때문이다.
이서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근데… 강지유는 오늘부터 스케줄 빠졌대. 갑자기.”
“지유가?”
예린이 눈을 크게 떴다.
“응. 아까 소민 언니한테 문자 왔었대. 급하게 가족 문제로 며칠 쉰다고… 근데 지유랑은 연락이 안 된다더라.”
말이 끝나자 순간 거실이 얼어붙었다.
박소민은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 검색하다 이내 화면을 껐다.
윤해솔은 말없이 물을 마시더니, 컵을 내려놓고 손끝을 떨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대표, 하늘, 그리고 이제 지유.
예린은 쪽지를 다시 꺼내 손안에 꼭 쥐었다.
하늘이 건넨 그 쪽지는 여전히 뭉개지고 찢어진 채였다.
그 안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무언가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예린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방 안은 숨죽인 듯 조용해졌다.
에어컨은 꺼져 있었고, 바닥엔 해 질 녘 햇살이 기묘한 각도로 비쳐 하얀 장판 위에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벽시계는 초침을 또각또각 소리 내며 돌리고 있었고, 그 소리마저 불안하게 들렸다.
공기는 무겁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께가 답답했다.
책상 위, 조그맣게 접힌 쪽지 한 장이 예린의 시야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 종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마음은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그날, 하늘은 말없이 쪽지를 건넸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언니가 읽어줘요.”
짧은 말, 하지만 그 속엔 수많은 의미가 감춰져 있었다.
그녀의 표정, 말투, 눈빛은 모두 평소와 달랐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혹은 마음속 깊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예린은 쪽지를 가만히 손끝으로 눌렀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종이의 온도가 전해졌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어떤 감정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묻고 있었다.
‘내가 이걸 펼치면… 무언가가 시작되는 걸까?’
창밖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커튼 너머로 비친 그림자가 벽을 스쳐 지나가며 방 안의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예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에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밖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람 한 줄기와 저무는 하늘,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는 골목뿐이었다.
기이한 정적은 방 안을 점점 조여왔고, 예린의 숨결도 거칠어졌다.
그때, 갑자기 문이 ‘쿵쿵’ 울렸다.
“예린 언니! 언니!!”
떨리는 목소리, 윤해솔이었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예린은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해솔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있었고, 손은 떨리고 있었다.
“지금… 소민 언니가… 사라졌어요.”
해솔은 말끝을 흐리며 바닥을 바라봤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손톱은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 정도로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예린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하늘, 지유, 그리고 이제 소민까지.
이건 단순한 우연일 리 없었다.
모든 연결고리는 자신이 쥐고 있는 쪽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섰다.
쪽지는 마치 그녀를 응시하듯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그녀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 무게는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무거웠다.
종이를 들고 있는 손끝이 떨렸다.
마치 종이 안에 무언가 살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린은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실종이 아니야.”
그 순간, 방 안이 한층 더 조용해졌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시계 초침조차 멈춘 듯한 느낌.
그녀는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치려 했다.
그때 또다시,
문이 ‘쿵’ 하고 울렸다.
이번엔 훨씬 더 묵직하고, 의도적인 소리였다.
예린은 멈춰선 채, 가만히 문을 바라봤다.
그녀의 손끝은 종이를 꼭 쥔 채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이건 시작이야.”
창작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