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3화
메시지
‘엉? 뭐야? 꿈이었어…휴…’
사라진 멤버 걱정을 하다가 스스르 잠이 든 사이 이상한
꿈을 꾼 예린이는 땀을 흠뻑 흘린 채 눈을 떴다.
“아, 갈증나…”
부엌에 물 마시러 나온 예린이는 거실과 현관 사이 복도
중간방에서 누군가 억누르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예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윤해솔이 방바닥에 웅크린 채 있었다.
무릎을 가슴에 꼭 붙이고,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창백한 얼굴, 충혈된 눈, 땀에 젖은 머리카락, 떨리는 손.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입을 꾹 다문 채, 무언가를 삼키듯 울먹이고 있었다.
예린은 급히 다가가 해솔의 어깨를 감쌌다.
“해솔아, 괜찮아? 무슨 일이야?”
그 순간 해솔의 입술이 벌어졌지만, 목소리는 뒤늦게 따라 나왔다.
“방금 전에… 소민 언니가… 사라졌어요.”
그 한마디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예린의 심장이 멎을 뻔 했다.
“…뭐라고?”
“아까… 언니 방에 갔었는데, 없었어요.
폰도 그대로 있고… 다 그대로인데… 사람만, 없어졌어요…”
“그냥 잠깐 나갔을 수도 있어.”
“아니예요.” 해솔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어요.
커튼이 흔들리고 있었고, 선풍기 코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언니 슬리퍼는 침대 옆에 그대로 있었어요.”
그 말에 예린이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건 단순한 부재가 아니었다.
도망도 아니고, 외출도 아니고…
마치 무언가에 의해 ‘사라진’ 듯한 부재.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의 흔적이 방 안에 남아 있었다.
그제야 해솔의 얼굴이 진짜로 보였다.
그동안 팀에서 가장 예민하고 총명한 아이.
무대에선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던 그 해솔이 지금,
마치 모든 것을 목격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망가져 있었다.
‘아 맞다 쪽지! 꿈에 나왔던 쪽지…’
예린은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서 옷장 안쪽 구석에 넣어뒀던 크로스백을 열었다. 가방 맨안쪽 주머니 깊숙이 넣어뒀던 쪽지를 꺼내 다시 해솔이에게 갔다.
구겨진 종이, 오래 쥐고 다닌 흔적이 역력했고,
가장자리 잉크는 땀에 젖은 듯 번져 있었다.
끝자락은 살짝 찢어져 있었고, 무심코 접은 자국이
여러 번 교차해 있었다.
해솔은 그 종이를 바라보며 어느새 숨을 멈추고 있었다.
입술을 앙다문 채, 쪽지를 보는 것도 무서워하는 듯,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 뭔가 알아야 할 진실이 담겨 있을
거라는 걸 직감하는 눈빛이었다.
예린은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
그 안에 번진 글씨들이 마치 이끌리듯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가 사라지기 며칠 전에 다급하게 쥐어 준 쪽지.
하늘이의 체온이 종이 안에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뭔가를 알았고,
그걸 말하지 못한 채, 대신 이렇게 남긴 거였다.
예린은 쪽지를 조심스레 해솔에게 내밀었다.
“이건… 이제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해.
숨기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아.”
해솔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끝내 종이를 펼쳐 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적힌 한 줄을 따라 시선이 천천히 멈췄다.
쪽지를 펼쳐든 해솔의 시선이, 종이 위 한 문장을 따라
천천히 멈췄다.
“무대를 만들면 그녀가 올 거야.”
그 문장을 입술로 따라 읽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이상하게 진동했다.
말 한마디가 이토록 무거울 수 있을까.
해솔은 종이를 내려다보며 숨을 고르려 했지만,
목 안이 말라붙은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예린은 조용히 다가가 해솔의 손에서 쪽지를
다시 건네받았다.
예린이가 천천히 말했다.
“이제 이 의미를 우리 모두가 알아내야만 해.”
숙소 거실.
간접 조명만 켠 채 아홉 명의 멤버들이 둘러앉았다.
침묵 속에서 쪽지를 바라보던 배도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거, 하늘이가 쓴 거 맞지?”
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나한테 줬어.
리더님, 혹시 모르니까 이거 나중에 꼭 보여줘요.
진짜 꼭요.”이렇게 말했어.
그땐 그냥… 언니들에게 주는 애정과 응원의 글인줄 알았어.”
은비가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무대를 만들면… 그녀가 올 거야…
‘그녀’가 누굴 말하는 걸까.”
“소민 언니… 아니면 지유… 하늘이 자신일 수도 있어.”
윤정연이 말했다.
정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셋 다… 우리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
모두일 수도 있어.”
불안과 두려움이 동시에 피어나는 순간,
서유진이 갑자기 무릎을 쿵 하고 치며 말했다.
“기억 안 나? 하늘이가 예전에 말했잖아.
혼자 가서 노래한 무대 이야기.”
“아! 그거.” 한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더라 무슨 폐교 강당이었지.
도시외곽 어디였다 했는데… 재개발인지 뭔지 때문에
곧 없어진다던…”
“맞아. 강당에 조명도 없고, 마이크도 고장 나서
아무도 안 들었는데…
하늘이는 그걸 무대라고 부르면서 혼자 노래했대.”
예린이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시연이 말을 이었다.
“그게 단서였던 것 같지 않아?”
예린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저장한 사진을 뒤적이더니,
곧바로 찾던 사진 하나를 열었다.
하늘이가 며칠 전, 무심하게 보냈던 바로 그 사진.
‘출입금지.철거 예정, 로봇 산업단지 조성 예정지’
“그래,여기야. 이 위치… 폐교 강당.
쉬는 날에 하늘이가 혼자 갔던 장소.
집에 간다고 하고 여길 갔었구나… 제법 먼 거린데…”
예린이는 폰사진을 멤버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맑던 아이가 혼자 어떤 고민이 있었던 거야...”
유진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윤해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진짜로… 우리 지금 거기
가봐야하는 거 아녜요?”
“응.” 예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쪽지에 적힌 말… 그냥 시적인 표현이 아니야.
하늘이는 우리에게 무대를 만들라고,
그러면 ‘그녀’가 온다고.
그건 사라진 누군가를 되돌리는 방식일지도 몰라.”
은비가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그래… 날이 밝으면 모두 함께 가보자.”
“일단 이렇게 하자. 날이 밝으면 운영진에게
실종 사건을 전달할 거야. 그럼 자체 조사든, 수사기관에
맡기든 뭔가 움직임이 있을 거야.
그러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각자 심리 안정을 취하러
며칠간 휴가를 내고 본가에 간다고 말하자.
그런 다음 본가에 가기 전에 거기서 다시 만나는 거야
알겠지?”
예린이가 폐교 방문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멤버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사 사무실.
회사 직원들도 크게 놀랐고 당황했다.
회사에서는 계약 조항대로 휴가를 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아직 실종이라고 단정하기엔 이릅니다.
수사기관에서 일단 조사를 시작했으니 결과를 기다려 봅시다.
여러분들은 휴가기간 중 가족과 외부에는 철저히 입단속을 하셔야 합니다.”
남은 9명의 멤버들은 폐교 강당의 철문 앞에 다시 모였다. 문은 녹슬어 있었지만, 닫혀 있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선 순간,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빛이 잘 닿지 않는 공간.
탁하고 낯선 공기.
하지만... 확실히 이 안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예린이 맨 앞에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나무 바닥은 삐걱거렸고, 움직일 때마다 낡은 먼지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뒤로 멤버들은 조심스럽게 따라 걸으며 강당을
둘러보았다.
“여기 진짜... 하늘이가 다녀간 거 맞겠지?”
하윤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아직 확실한 건 아냐.”
은비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근데…분명 누군가가 다녀간 게 분명해.
이쪽에 먼지 쌓인 걸 봐봐… 운동화 자국이 희미하게 보여…”
강당 무대 옆에 있던 예린이가 비상구 근처로 이동하며
발자국 흔적을 가리켰다. 쌓여 있는 소품 상자들.
예린은 그중 하나를 열었다.
무대 조명 필터, 부러진 스탠드, 그리고 낡은 무대복 몇 벌.
그 밑에 조심스럽게 끼워져 있는 얇은 노트가 있었다.
“이건…”
예린이 그것을 꺼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누렇게 바랜 노트 표지 안쪽,
다 쓰이지 않은 메모 페이지 한 구석에,
정갈한 손글씨가 보였다.
“그녀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줘.”
"...쪽지?"
해솔이 다가오며 속삭였다.
“하늘이 쓴 건 아니예요. 필체가 달라요…”
은비는 눈을 떼지 못했다.
입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유 언니 거야. 나, 알아.”
모두가 동시에 은비를 바라봤다.
그 말에는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었다.
은비의 확신은, 마치 잊고 있던 무언가를
깨워낸 감각처럼 생생했다.
‘왜 여기에 지유의 글이 있는 거지?’
‘그녀가 여길 다녀간 건가…?’
‘그녀는 누구를… 왜 해방시키려 한 거지?’
머릿속에 질문이 쌓여갔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오히려 그 침묵이 공간을 더 서늘하게 감쌌다.
그 순간,
창문 너머에서 매우 낮은 진동음이 미세하게 울렸다.
자동차 소리도, 바람 소리도 아닌…
어딘가 멀리서 눌린 심장박동 같은 소리.
“방금… 들었어요?” 시연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안 들렸는데.” 서유진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도, 분명 떨리고 있었다.
예린은 리본을 다시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그것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남긴 실마리가 아닐까…
그리고 지금도 이 무대를 떠나지 못한
원혼의 ‘소리 없는 절규’ 같았다.
“이 무대는...”
예린이 천천히 말했다.
“무대를 통해 누군가를 부르는 주술의식일까?”
“아니 그럼, 사람을 데려가서 뭘 해야 한다고요?“
정연의 질문은 호러 장르 그 자체였다.
강당의 공기가 냉랭해졌다.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시연은 조용히 강당 무대 앞에 서서 주먹을 꽉 쥐었다.
“왜 자꾸… 이런 느낌이 들지?”
속삭이듯 말한 그녀의 눈은, 무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조차 이유를 모르는 시선이었다.
은비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숨을 죽였다.
그녀의 귀가 예민하게 떨리는 듯했다.
“이상해. 여기… 음악 연습실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게 나.
아주 작게… 반복적으로.”
“무슨 말이야?” 예린이 다가갔다.
“진짜야. 귀 기울여봐. 쉿…”
그 순간, 모두가 숨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진짜로
무대 위에선 소리 같지 않은 소리,
마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기울어진 속도로
돌아가는 듯한…
잊힌 목소리의 파편이 섞여 나오는 것 같았다.
정연은 자신도 모르게 무대 뒤편 커튼을 걷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누군가 있었어요.
지금은 없지만, 분명히… 있었어.”
그 말에 해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유 언니는… 여길 찾았고, 뭔가를 본 거예요.
그러니까… 메모를 남긴 거고.”
예린은 손에 쥔 낡은 노트의 메모를 다시 바라봤다.
짧은 문장이지만, 거기엔 지유의 마지막 감정이 녹아 있었다.
그녀는 누구를 해방시키고 싶었던 걸까.
혹시… 해방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그 안에
가두려 했던 건 아닐까.
멤버들은 다시금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모두가 각자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말들이,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녀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줘.’
그 말은 끝이 아니라, 찾아내야 할 무언가가
더 있다는 힌트가 분명했다.
무대 중앙에 선 예린은 고개를 들었다.
무너진 조명, 삐걱이는 철골 구조물, 그리고
벽면을 타고 흐르는 균열. 이곳은 분명 폐허인데,
어쩐지 너무 따뜻했다.
“여기가... 혹시…
하늘, 지유, 소민이가 함께 만났던 곳일까.”
예린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멤버들은 조심스럽게 무대 아래에 모였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늘, 지유, 소민 세 사람은 이곳에 왔고,
지금은… 없다…
대표님과 멤버 셋은 어디로 갔을까?
기적처럼 얻은 인기를 한껏 누리려고 하던
그룹이었는데…
도대체 왜 갑자기…
서유진이 무대 한켠에 놓여 있던 낡은 오르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 무대, 누군가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어요.
안 보이는데… 계속 느껴져. 노래했던 시간,
울었던 밤, 손잡고 웃던 순간들…”
해솔이가 천천히 예린이 곁으로 다가왔다.
“…리더님.”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 무대에서, 우리… 무언가 해야 해요.”
“하지만 아직… 애들이 남기고 간 메시지가 무엇을
알려주는 퍼즐인지 진짜 모르겠어...”
예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메시지는 겨우 두 개뿐이야.
근데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세 번째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시연이가 말을 이었다.
정연이 그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마지막 메세지가 우리한테
아직 도달하지 않은 거라면, 그건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침묵이 흘렀다.
“이 무대엔… 아니면 여기를 둘러싼 공간
전체에 분명히 뭔가 있어.”
예린이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힘을 주어
말했다.
그 말에 멤버들이 하나둘씩 다가왔다.
조명도, 악기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트웰브의 마음은 단 한 곳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예린은 조용히 일어섰다.
“이건 시작이야. 우린 지금… 단지 그 문 앞에 도착했을 뿐이야.”
어느새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트웰브는 각자 흩어져
따로따로 숙소로 돌아왔다.
매니저에겐 각자 집에 가서 밥만 먹고 왔다고 둘러댔다.
모두 말이 없었다.
두 개의 메시지,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
그 모든 것이 각자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해솔은 거실 소파에 조용히 앉았고, 서유진은 냉장고에서 조용히 물을 꺼냈다.
그 작은 소리마저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모두의 숨결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줘…”
정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유 언니가 그걸 왜 썼을까.
그냥 떠난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해.”
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무언가를 남기고 떠난 것’ 같아.”
그 말에 은비가 눈을 들었다.
“근데 세 번째 메시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지민이가 눈을 번쩍 뜨며 살짝 손뼉을 쳤다.
“맞다! 지금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사라진 세 명이 남긴 내용이 말야. 진짜 무대를 만들어 ‘우리를 부르라’고 말하는 거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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