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무렵이었다.
어느 여름날 오후에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동네 형들이랑 친구들.
대여섯명과 동네 뒤편
출입이 제한된 숲에 들어가
정신없이 노는 사이에
폭우가 내렸다.
모두 큰 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
비가 점점 가늘어질 때쯤
집에 어서 돌아가기 위해
나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들이
처음에 들어왔던
그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제법 물이 불어난
도랑과 마주치게 되었다.
출입을 제한하는 철조망이
도랑을 가로질러 쳐져 있었다.
형 한 명이
이것을 잡고 건너 가면
처음 들어왔던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모두들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먼저 말했던 그 형부터
건넜다.
마치 특수부대 군인아저씨가
외줄 로프를 타고 절벽계곡을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상황과
비슷했다.
형들은 평소에 태권도로 단련되어
그런지 철조망 선을 움켜잡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일초도
지체없이 잘 건너 갔다.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겁은 많이 났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손은 철조망의 선을 잘 움켜잡고
발은 철조망 구멍에 끼웠다.
어서 빨리
형들처럼 건너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대략 3~4m 정도 너비의 도랑인데
철조망 아래에 빠르고 거칠게
흘러가는 물살이 보였다.
나는 한 발도 떼지 못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겁을 먹고 몸이 얼어 버렸다.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먼저 건너간 형들이
철조망 꼭 잡고 천천히
건너면 된다고 달래 주었다.
내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울음소리를 안으로 삼키며
한 걸음씩 발을 떼기 시작했고
곧 무사히 건너편에 닿았다.
'이제 살았다'
혹시 그 때 거기에
네가 있었던 거니?
그래,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 때, 두려워
눈물을 흘렸을 때 그래도
조금씩 몸을 움직이게 한
또 다른 내가 있었어.
이전엔 몰랐지만
늘 나와 함께 있었던 거야.
두려워 울고 있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또 다른 나.
* 비빔박 萬花芳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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