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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 Mash up

그 때 거기에 나와 함께 있었구나

by Ganze 2012. 6. 14.


6살 무렵이었다.
어느 여름날 오후에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동네 형들이랑 친구들.
대여섯명과 동네 뒤편
출입이 제한된 숲에 들어가
정신없이 노는 사이에
폭우가 내렸다.

모두 큰 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

비가 점점 가늘어질 때쯤
집에 어서 돌아가기 위해
나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들이
처음에 들어왔던
그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제법 물이 불어난
도랑과 마주치게 되었다.

출입을 제한하는 철조망이
도랑을 가로질러 쳐져 있었다.

형 한 명이
이것을 잡고 건너 가면
처음 들어왔던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모두들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먼저 말했던 그 형부터
건넜다.

마치 특수부대 군인아저씨가
외줄 로프를 타고 절벽계곡을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상황과
비슷했다.

형들은 평소에 태권도로 단련되어
그런지 철조망 선을 움켜잡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일초도
지체없이 잘 건너 갔다.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겁은 많이 났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손은 철조망의 선을 잘 움켜잡고
발은 철조망 구멍에 끼웠다.

어서 빨리
형들처럼 건너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대략 3~4m 정도 너비의 도랑인데
철조망 아래에 빠르고 거칠게
흘러가는 물살이 보였다.

나는 한 발도 떼지 못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겁을 먹고 몸이 얼어 버렸다.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먼저 건너간 형들이
철조망 꼭 잡고 천천히
건너면 된다고 달래 주었다.

내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울음소리를 안으로 삼키며
한 걸음씩 발을 떼기 시작했고
곧 무사히 건너편에 닿았다.

'이제 살았다'

혹시 그 때 거기에
네가 있었던 거니?
그래,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 때, 두려워
눈물을 흘렸을 때 그래도
조금씩 몸을 움직이게 한
또 다른 내가 있었어.
이전엔 몰랐지만
늘 나와 함께 있었던 거야.

두려워 울고 있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또 다른 나.


* 비빔박 萬花芳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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